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토니 라 루사 (문단 편집) === [[시카고 화이트삭스]] 1기 === [[파일:external/3putt.files.wordpress.com/larussa-manager1.jpg|width=300]] 1978년 [[시카고 화이트삭스]] 더블A 팀의 감독이 된 TLR는 1979년 중 시카고의 트리플A 감독이 되었다가 기존의 감독이 부진을 면치 못하면서 빅리그 감독으로 승격되었다. 그리고는 시즌이 ⅔에 머물던 시점에 46승 60패에 머물던 팀을 시즌 마감 때 5할 승률에 맞춰놓는 기염을 토했고, 삭스는 TLR를 계속 기용하기로 결정했다. 그렇게 TLR는 성공적으로 메이저리그 감독으로 데뷔하였고, 1983년 99승 63패를 기록하며 ALCS까지 진출시켰다. 비록 [[볼티모어 오리올스]]에 패배했지만, 블랙삭스 스캔들 이후 부진을 거듭해온 팀 역사상 의미있는 기록임에 분명했다. 이러한 성과를 인정받아 올해의 감독으로 선정되었다. 1984년에는 [[밀워키 브루어스]]와의 경기에서 25이닝 연장전에서 승리를 따내기도 했다. 당시 시카고의 [[칼튼 피스크]]는 25이닝 내내 포수로 뛰었으며, 이후 세인트루이스에서 역시 라루사가 육성한 [[야디어 몰리나]]가 20이닝 동안 포수로 뛰는 기록을 세운다. 하지만 1986년 팀은 초반 26승 38패로 부진을 겪었으며, 팀은 성적의 책임을 물어 TLR를 경질했다.[* 이때 단장이 오랫동안 화이트삭스 전속 중계를 맡은 선수 출신의 해설가 'Hawk' 켄 헤럴슨이었다. 원래도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다 구단 경영자를 맡겨본 건데, 단장을 맡는 동안 TLR을 자르고, 부단장 [[데이브 돔브로스키]]를 자르고, 유망주 [[바비 보니야]]를 타 팀으로 보내는 등 실정만 저지르다 일찌감치 잘리고 [[허구연]]마냥 다시 중계진으로 돌아갔다.] 이것은 토니 라 루사가 30년 감독생활 동안에 경질된 유일한 경우이다. 그 외에는 타의로 잘린 적이 없다. 그로부터 불과 몇 주만에, [[오클랜드 애슬레틱스]]가 TLR을 감독으로 영입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